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문단 편집) ==== [[9.11 테러]]와 전쟁의 시작 ==== [[9.11 테러]]라는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대형 참사에 꼭지가 돌아가 눈에 뵈는게 없을 정도로 [[극대노]]한 미국은 테러의 배후를 찾아내 박살내어 지구상에서 지워버리려 하였다.[* 통념과 달리 [[9.11 테러]] 이전의 미국 역사를 통틀어 미국 '''본토'''가 공격받은 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1812년 [[미영전쟁]] 때는 [[워싱턴 D.C.]]를 점령한 영국군에 의해 백악관이 불탄 적도 있었고, [[멕시코군]]이 국경을 침범하거나 양차 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에게 공격당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미영전쟁]]은 당시를 기준으로 200여 년 전의 일이었고, 멕시코군이나 독일군의 공격은 본토에 피해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일본군은 진주만에서 '''[[진주만 공습|미군 전함들을 대부분 파괴하는 큰 피해]]'''를 입혔지만, 미국 본토에는 [[풍선폭탄]]으로 자잘한 피해만 입혔을 뿐이었다. 때문에 미국인들의 사고에는 '''"전쟁이 일어나도 미국 본토는 총알 한 발 안 떨어질 만큼 안전하다"'''는 믿음이 자리잡혀 있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무너뜨린 것이 바로 [[9.11 테러]]였다.] 테러 단체의 공격으로 미국 본토 내에서도 미국의 심장부라고 할 만한 [[뉴욕]], 그 중에서도 자본주의의 상징인 건물이자 중심부인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붕괴 이전)|세계무역센터]] 두 건물이 흔적도 없이 무너지고, 수도 [[워싱턴 D.C.]]의 [[펜타곤|국방부 건물]]마저 공격당하며 3,000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나왔다는 사실은 전 미국인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전쟁 수행의 정당성을 실어주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저자 [[크리스 카일]]의 회고에 따르면 네이비 실 요원 시절 테러 사건 발발 이후 긴급 소집으로 인해 부대로 빨리 복귀하는 과정에서 교통위반에 걸려 경찰에게 붙잡혔는데, 본인이 네이비 실이어서 빨리 가야 한다고 말하자 경찰이 길을 열어드리도록 안내해드릴 테니 꼭 개자식들에게 복수해 달라며 크리스 카일 차 선두에 서며 그를 부대까지 안내했다고 한다.] 여론은 이 사태를 제2의 진주만 공습으로 간주하고 일제히 [[복수]]를 외쳤고, 정치권도 야당, 여당 할 것 없이 주전론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국제 사회도 유례없는 테러에 함께 분노한 것과 더불어 [[소련]]이 무너지고 정당한 명분이 생긴 사실상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의 강경한 주전론에 거스르는 국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평소 깐죽거리며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며 도발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북한]]을 비롯한 [[반미]]+[[반서방]] 국가들마저도 이 시기만큼은 미국의 눈치를 살피며 바짝 엎드리고 유감을 표하기에 바빴다.'''[* 이때 분위기 파악 못하고 9·11테러는 신의 응징이라며 어그로를 끈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 전쟁에서 패전하여 축출되고 이라크 전쟁 개전 약 3년 후(9.11 테러 발생 약 5년 후) 이라크의 시아파 정부에 의해 교수형을 당하게 된다.] [[이란]]의 [[이란#s-10|신정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테러는 나쁜 짓이지만 그렇다고 복수는 옳지 않다"고 표명한 정도가 그나마 유화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란 역시 이때는 내부적으로 벌벌 떨면서 어떻게든 미국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고 나중에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되자 미국을 적극 도와주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하여 이슬람권 국가의 대중은 "또 미국이 테러를 핑계로 남의 나라를 침략하려 하는구나!"라고 반미 시위를 했지만 시위는 젊은 학생들과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 민간 단체들이나 했지 각국의 정부들은 미국의 분노가 자신들에게 번질까 벌벌 떨었다. 한편 그 당시 미국과의 대표적 라이벌 중 하나인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초기 재임 시절이어서 전임 대통령인 [[보리스 옐친]]의 실정에 의한 혼란을 수습하고 복구하느라 내부적으로 바빴던지라 국제정세에 별 관심이 없었고[* 게다가 이 시기 러시아는 [[체첸]]을 상대로 자신들만의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미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러시아는 온갖 전쟁범죄와 비인간적인 수단을 총동원한 끝에 [[이츠케리아 체첸]]을 멸망시키고 반군 세력을 완전히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매우 아픈 타격을 입었던 옛 소련 시절의 경험에 의해 미국의 탈레반 정권 공격을 굳이 막지 않았으며 애당초 막으려 했다 한들 이미 눈 돌아간 미국이 들었을 리도 만무했다. 2021년 8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주둔을 지지하고 있었다. [[중국]]은 아프간하고 맞닿아 있어서 자국에도 테러 피해가 올 가능성도 있었고 미국이 대신 잡아주겠다고 하니 역시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했다. 반미 테러 조직들마저 [[미국 중앙정보국|CIA]]나 [[미합중국 국방부 청사|펜타곤]]에 앞다퉈 연락해서 자기들은 무고하며 다른 놈들이 수상하다고 밀고를 할 정도였다. 보통 이런 테러 조직들은 [[허세|세간의 관심을 끌고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무슨 사건이 터졌다 하면 자기들이 하지 않았어도 자기들이 한 일이라고 떠벌리고 다니기가 일쑤였는데 9.11 때만큼은 정반대였다. 당시 미국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외치며 그 어느 때보다 테러 조직 '''박멸'''의 의지를 강하게 내보였고, 전쟁의 해악성이나 윤리, 국가 이미지, 전쟁으로 인한 손익 따위를 따질 상태가 아니었다. 목표로 지정되는 순간 수장부터 말단까지 섬멸당할 게 뻔했기에 그 누구도 미국을 도발할 생각이 없었다. 얼마 뒤 이 테러의 배후에 [[오사마 빈 라덴]]과 그가 거느리는 [[알 카에다]]가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가 속속 나오자 미국은 복수전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이 이들을 보호해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집권 세력인 [[탈레반]]에게 좋은 말 할때 순순히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 요원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며 엄청난 전력을 인근에 집결시켰다. 이미 테러 당일 [[엔터프라이즈급 항공모함]] 전단이 '''집에 가던 귀국길을 유턴하여''' 인도양에 전개를 마쳤고, 뒤이어 수많은 해군 전력이 가세한 상황이었다. 탈레반은 미국이 하늘길 또는 육로로 와야 하는데 파키스탄을 거치지 않는 이상 직접적으로 침공해 올 루트가 없고, 자신들의 후견국인 [[파키스탄]]이 영공을 열어주지 않으면 침공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오판해서 이를 거절했다. 탈레반과 아프간 부족회의는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변을 인도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거절하면서도 오사마 빈 라덴에게는 [[아프가니스탄]]을 떠날 것을 권고했다. 강제 추방이 아니라 권고인 점에서 보듯이 이 시점에 탈레반은 이미 미국의 분노를 사기엔 충분했다. 그렇더라도 미국이 이 전쟁을 할 정당한 명분이 생기는 건 아니다. 극단주의 단체라는 동질감은 있었지 알 카에다는 탈레반 산하 단체가 아니었기에 간섭을 할 수 없다. 게다가 그렇게 믿고 있던 후견국 파키스탄도 '쓸데없이 버티지 말고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순순히 미국에게 내주는 게 신상에 좋을 것'이라고 필사적으로 탈레반을 설득하려 했지만, [[무자헤딘]] 출신도 섞여 발족된 [[탈레반]]은 자기들은 소련마저 이겼다는 자부심 때문에 오히려 [[파키스탄]]조차 겁쟁이라고 비난하면서 거부하고 나섰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공격을 받는 것은 무서웠는지 미국의 요구안은 듣지 않으면서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립 서비스를 했지만 [[미국]]의 분노는 그런 말장난으로 식을 수준이 아니었다. 신병인도 요구가 안 통하자 미국은 아프간 탈레반 정부의 반군 세력인 [[아프가니스탄 구국 이슬람 통일 전선|북부동맹]][* 탈레반, 또는 이들의 지지 세력인 파슈툰족에 반대하는 부족들이 결성하여 세운 단체.]에 엄청난 자금과 최신 무기를 지원했고, 영공사용 허가를 거부하는 파키스탄에게는 "[[최후통첩|'''좋은 말 할 때 길을 내주지 않으면''']] [[커티스 르메이|'''탈레반과 같이 석기시대로 만들어버리겠다.''']]"며 협박하는 동시에 영공 사용료를 주는 당근을 제시했다. 파키스탄은 미국에게 대들어서 망하는 것보단 차라리 돈 받고 협력하자는 계산 하에[* 다만 이는 단순한 경제지원이 아니고, [[파키스탄의 핵개발|1998년의 핵실험]]으로 이루어졌던 경제제재의 철회 역시 포함된 것으로서 사실상 '''파키스탄의 핵 개발 및 보유를 묵인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수락하여 미국은 단박에 영공 사용권을 얻어냈다. 저 석기시대 발언은 리처드 아미티지 당시 국무부 부장관이 [[파키스탄]] 고위 정보 당국자에게 건넨 말이라고 한다.[[http://news.bbc.co.uk/2/hi/south_asia/5369198.stm|#기사]] 그리고 뒤이어 아프간 북쪽에 있는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의 중앙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이 미국에 자국 영토 및 기지 사용 권한을 준다.[* 중앙아시아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러시아 또한 이를 묵인했다. 국내정치는 옐친의 실책을 수습하던 푸틴 정권으로 바뀐 지 얼마 안 된 아직 혼란스럽던 과도기인 데다 미국이 아프간에 들어가 탈레반을 때려잡아서 맡닿아 있는 중앙아시아 영역에 탈레반의 영향을 크게 위축시키는 것도 이득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프간 서쪽의 [[시아파]]국가로서 [[수니파]]세력인 탈레반과 앙숙인 [[이란]]마저도 탈레반을 비난하고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면서 탈레반 치하 아프가니스탄은 순식간에 포위된 상황에 놓였다. 그래도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마지막까지도 개전을 막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사우드 왕가와 하메네이는 미국 측에 접촉하여 자기들이 아프간하고 으르렁거려봐서 아는데, 거기를 무력으로 점령하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라면서 마지막까지 외교적인 해결을 할 것을 주문하였고, 사우드 왕가는 급히 북부동맹과 탈레반 간의 평화협정 체결을 주선하려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가자 사우디아라비아는 즉시 탈레반과 단교하고 미국에게 군사기지를 제공하였으며 이란도 미국의 민사작전을 돕는 한편 미국이 지지하는 하미드 카르자이 정권의 수립을 돕기 위해서 카르자이의 라이벌들을 설득하면서 이들이 카르자이에게 협력하게 하는 등 배후에서 미국을 도와주었다. 미국은 즉시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결정했다. 탈레반 정권이 미군의 공습에 붕괴될 것은 확실시되었기 때문에 미국은 새 지도부를 모색하는 한편 이들을 지원해 줄 '''[[국제안보지원군]](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 ISAF)''' 창설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요구하였다. ISAF는 침공 2달 후 결성되었고, [[NATO]] 참여국을 포함한 수많은 나라들이 참가하였다. 그렇게 미국은 탈레반을 사멸 직전까지 몰아갔으나 '''[[이라크 전쟁|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탈레반이 살아남으면서 20년 전쟁의 시작이자 사실상 벌집을 건드린 셈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